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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하라

기사승인 [1587호] 201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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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 작가, 언론인

절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어떤 상(像)이나 그림이나 조각에 절을 해도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경배의 대상이 무엇이든 그 간절함이 자신을 정화시킨다. 몸을 엎드리면 마음도 엎드려진다. 몸뚱이를 아래로 내던져 몸으로, 말로, 생각으로 지은 삼업을 떨쳐내게 된다. 절을 하면 아만(我慢)이 사라진다. 절하는 사람에게는 평화가 찾아온다.

몇 해 전 가야산 백련암을 찾았다. ‘성철 평전’을 쓰기 위해 스님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을 때였다. 백련암은 성철스님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삼천배를 시킨 곳이었다. 생전에 스님은 돈 보따리와 계급장은 일주문 밖에 걸어두고 알몸만 들어 오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법당에서 삼천배를 올려야 비로소 방문을 열어주었다. 스님은 저 언덕으로 떠나가시고 객이 들어 서성거렸다. 초가을 밤하늘은 맑았다. 마당에 별빛이 수북했다. 별빛을 조심스레 밟고 있으려니 홀연 법당 문이 열렸다. 그리고 삼천 배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왔다. 그들의 얼굴엔 속기(俗氣)가 지워져 있었다. 그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했다. 초가을 한기와 별까지 삼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주 아래 지구라는 별에서, 그 아래 한 점도 안 되는 산 속에서, 그 속의 절에서, 또 그 속의 작은 법당에서, 작은 사람이 절을 하고 있었구나.”

삼천번 절을 한 사람들은 말했다. 자신의 잘남과 교만과 위선이 빠져나갔다고. 그리고 그 자리에 작은 한 인간이 나타났다고. 또 미천하고 연약한 자신을 품어준 존재들을 발견했다고. 자신을 낮추는 것보다 성스러운 것이 있을까. 절을 하면 비로소 이웃과 생명이 보인다. 그들이 곁에 있어 고맙다. 그들과의 동행이 곧 기쁨이다.

성철스님은 날마다 새벽에 절을 하며 이렇게 발원했다. “내가 이제 발심하여 예배드림은 제 스스로 복을 얻거나 천상에 머물 것을 구함이 아니요, 모든 중생이 함께 무상보리를 얻고자 함입니다.” 절은 기도이며 참회이다. 엎드려 절하는 사람에게 욕심이 붙어있을 수 없다. 절을 하면 요란한 삶의 장식품을 벗겨낼 수 있다. 우리는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앞세우며 이를 ‘자존’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고개를 세울수록 세파는 거세게 달려들고 마음은 요동칠 뿐이다. 절하라. 그러면 세상의 슬픔과 아픔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절은 절하는 곳이다.

김택근 작가, 언론인

<저작권자 © 동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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