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형태의 예술 활동을 보장하는 것, 풍부한 문화의 첫걸음

잘츠부르크 미술협회에서 예술가에게 제공하는 스튜디오 내부

고풍스러운 건물과 풍경, 그 속의 동유럽 거리예술가들은 마치 그 풍경에 녹아든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그들과 어우러지는 관객들의 모습으로부터 예술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문화를 느낄 수 있다. 동유럽의 사람들이 이렇게 예술을 친숙하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예술을 생활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위한 예술을 생산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예술가들이 생활고를 겪거나 작품의 내용이 정치적으로 제한을 받아 예술 활동을 정상적으로 이어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극단 99도의 홍승오 대표는 “극단만의 고유한 색을 낼 수 있는 작품을 지속해서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충당할 만한 경제적인 여력이 필요하다"며 활발한 예술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 정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예술가가 직업으로써 생활을 영위하고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이를 대변한 정책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생활고와 가치관의 제한

“예술은 돈벌이가 안 된다.”
예술가들이 겪는 어려움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동유럽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동유럽에서 만난 대부분의 예술가는 그들의 주변 환경이 예술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확답하지 못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소피아 셈조(Zsofia Szemzo) 씨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예술가로서 가장 큰 어려움”이라며 “예술 활동으로 충분한 수입을 내지 못하면 생업을 따로 마련해야 하므로 작업할 시간이 부족해진다”고 말했다. 이렇듯 경제적인 어려움은 생활고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
실제로 신진 예술가들은 기성 예술가들보다 작품과 결과물을 대중들에게 선보일 기회를 가지기 힘든데, 이것이 생활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헝가리의 청년 큐레이터 모임인 텔레포트 갤러리(Teleport Galéria)에 소속된 반다 사라이(Vanda Sarai) 씨는 “청년 예술가들이 예술계에 제안하는 새로운 시각과 흐름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어려움은 실질적으로 예술가들이 예술에 대한 본인의 신념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부다페스트 아티스트 팀 볼쇼스 로렌스(Borsos Lorinc)의 릴라 로렌스(Lilla Lorinc) 씨는 “예술가들은 재단으로부터 예술 활동을 위한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작품의 메시지나 가치가 종속되거나 검열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경제적인 어려움은 단순한 생활고를 넘어 예술가들에게 딜레마로 작용한다.

안정적인 작업 공간과 전시 기회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은 동유럽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동유럽에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동유럽에서는 주로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들이 눈에 띄었다. 더욱이 젊은 예술가들의 경우에는 기성 예술가들과 비교하면 작업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장비나 공간 마련이 힘들기 때문에 이에 대한 도움이 필요하다.
잘츠부르크 미술협회(Salzburger Kunstverein)에서는 예술가들에게 일정 기간 동안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거나 스튜디오를 제공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렇게 완성한 작품들은 해당 미술관에서 전시되기도 한다. 잘츠부르크 미술협회의 회원 및 방문 서비스팀의 시나 모제르(Sina Moser) 씨는 “일정 기간 예술가들에게 본인들의 작업실을 제공하고, 여러 가지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다른 지역에 방문하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제공된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던 애니메이션 아티스트 라인홀드 바인더(Reinhold Binder) 씨는 “스튜디오에서 지속해서 공간을 확보하고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안정적”이라며,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도 있고 예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좋다”고 말했다.
헝가리 사진작가 협회(The Association of Hungarian Photographers)에서는 청년예술가들에게 전시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사진작가들이 이 협회에 소속돼 기성 아티스트로부터 조언을 받기도 하고 그 결과물을 선보일 기회를 갖기도 한다. 주택가 사이의 전시장에 작품들이 전시되고 지역 주민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이를 감상한다.
헝가리 사진작가 협회 소속의 부다페스트 메트로폴리탄 대학교 가브리엘라 울(Gabriella Uhl) 교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능력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협회의 도움을 받아 작품 전시를 진행한 빅토리아 발로그(Viktoria Balogh) 씨는 “사진작가 협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어서 기뻤고 많이 성장할 기회를 얻었다”며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예술가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저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발로그씨 조심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좋은 기회를 얻었지만 다른 예술가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아요.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 정책이 적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동유럽에서 만난 예술가들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정책이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취재 중 만난 예술가들 대부분이 공통으로 동유럽의 예술가들에게 충분한 경제적 여유를 줄 수 있도록 장학금의 규모가 확대돼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예술가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할 만큼 제도의 양과 질이 충분치 않다는 것.
부다페스트에서 활동 중인 아티스트 릴라 로렌스(Lilla Lorinc) 씨는 “예술가들을 위한 정책이 매우 변동적이고, 때로는 내부에 아무것도 들어설 예정이 없는 건물을 짓는 데 많은 양의 예산을 쓰기도 해요”라며 예산이 효율적으로 분배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예술가 지원 정책의 미비함은 어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아티스트 소피아 셈조(Zsofia Szemzo) 씨는 “예술이 사회에 유익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인식은 아직 부족한 것 같다”며 “예술의 중요성과 이에 대한 이해가 올바르게 정립된다면 예술가를 지원하는 정책에 대한 중요성 또한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의 삶이 곧 예술로 이어지기 때문.
예술을 자유롭고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동유럽에서도 예술이 삶의 필수 요소로서 생활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은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은 듯했다. 우리는 예술이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의 발전과 유지를 위해서 예술가 지원 정책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당연한 책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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