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삶는듯한 더위에 허덕일 때는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시원한 바람이 불고 쾌적한 기온이 되면 일의 의욕이 생긴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독서란 한마디로 말해 진지한 정신활동인데 더위에 찌들어 멍해 있을 때는 그 정신활동이 활발치 못하다.
우리 선배들은 하나같이 책 읽기를 권했다. 책을 읽으면 그 저자와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훌륭한 저자들을 많이 만나보라고 권했다. 어쨌든 독서는 매우 소중한 일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독서란 꼭 책을 읽는 것밖에는 없는 것일까. 「채근담」에는 우리에게 유익한 글들이 가득 들어있다. 그중에 “人解讀有字書 不解讀無字書”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은 글자를 쓴 책만 읽을 줄 알고 글자가 없는 책은 읽을 줄 모른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읽을 줄 모른다는 ‘무자서’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이다. 세계는 한 권의 책(아우구스티누스)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에게는 ‘세상’이라고 하는 매우 좋은 책이 있다. 이 좋은 책을 읽기 위해서 어디로든 가야 한다.
세계는/나의 학교/여행이라는 과정에서/나는 수없는 신기로운 일을 배우는/유쾌한 소학생이다
한국현대시의 선구자였던 김기림의 시에서 따온 말이다. 여행이란, ‘세계’라는 책을 읽고 배우는 행위다.
‘학자들이 매양 글만 가지고 문장을 구하면 종신토록 애써도 신기함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고 馬子才는 말한다. 그는 또 사마천을 말하면서 ‘소년 시절에 하루도 쉬는 일이 없이 여행을 했다. 그의 여행은 경물 景物을 구경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천하의 대관 大觀을 보아 얻어 자신의 기 氣를 조장하려는데 있었다. 큰물의 그 파도를, 많은 산의 그 웅심을, 모든 전지 戰地의 그 회고를 바로 자기 문장으로 옮겼다. 사기 史記가 그것이다’라고 했다. 사마천은 세상이라고 하는 큰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유자서’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러나 ‘무자서’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세상을 읽고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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