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국에서 이보다 더 신기한 단어가 있을까?
“한국분이세요?” “네! 한국 사람이에요.” 낯선 땅, 낯선 사람이라도 한국인이라는 화두로 경계선은 눈 녹듯 사라지고 편한 대화가 시작된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며 자신이 아는 최대한의 팁과 조언들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프랑스로 오기까지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한국인을 조심해’ 였다.
“외국 나가면 같은 한국인이랍시고 친절하게 접근하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야.”
이 말은 정말 사실일까?

파리에 있는 한국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파리 유학생 정 씨(26)는 “처음 집 구할 때까지 한인민박 썼었는데요. 숙박비 드릴 때는 이모님께서 엄청 친절하셨는데 제가 집 구해서 나간뒤로는 불어 통역 한번 부탁하는 것도 되게 빡빡하게 구시더라고요.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전화 한 통인데 서로 아는 사이에서 이득이 되는지 아닌지만을 너무 따지는 것 같아요.” 라고 이민자들에 대해 말했다.
반면 파리에서 한인 민박을 하는 한국인이자 프랑스 국적을 가진 오 씨(53)는 “사람을 고용하면 몇 유로씩 지불해야 할 일들을 같은 한국인이라고 너무 당당하게 도와달라 하고 거절하면 정이 없다느니 야박하다느니 너무 이용하려고만 든다. 일이 해결되면 같은 한국인 운운하며 고맙다는 말 한마디뿐이다.”며 관광객과 유학생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7구에 위치한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

 
외국에 살면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과 언어가 통한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나 또한 한국인으로부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고, 마음이 쓰인다. 지하철에서 소매치기 위험에 처해있는 한국인들을 보면 냉큼 다가가 챙겨주기도 하고 티켓을 사느라 헤매고 있으면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인으로부터 가장 힘든 일을 겪기도 했다. 폭언을 듣기도 했으며 범죄의 위험도 있었다.
멍청했던 과거의 내 사례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예전에 밤늦게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버스가 오기까지는 40분가량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차 한 대가 서더니 한국분이세요? 하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어디에 사냐고 묻고는 태워다 줄 테니 타라고 했다.
히치하이킹! 이게 웬 횡재야 싶어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차를 타고 보니 운전자가 꽤나 취해 있었다. 원래 취한 사람은 항상 나 안 취했어를 외치는 법. 보조석에 있던 친구라는 사람도 자신들은 술을 딱 한 잔씩밖에 안마셨다면서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둘이서 서로 누가 더 멍청한지 서로 디스를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와중, 한 명이 내렸는데 내릴 때부터 뭔가 대화가 이상했다. 내려야 하는데 한참을 어기적 거리며 내리지 않다가 여성분 꼭 잘 데려다 드리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한국이었으면 지나가는 차가 태워준다는 말을 당연히 거절했을 건데 외국에 사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쉽게 그들을 믿은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도 아무일 없이 나를 잘 데려다 주셨지만 정말 피 말리는 10분이었다.

 외국에 살면 한인업체를 이용할 일이 많다. 근교투어를 신청하거나 이사, 택시, 수리, 중고거래 등등... 프랑스에서는 원래 안 되는 일들을 편법으로 가능하게끔 해줘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말이 통하고 정서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한국인이라면 내가 뒷통수를 맞거나 속을 일은 없겠구나. 하며 근거 없이 안심하게 된다.
문제는 뭔가 일이 꼬였을 경우다. 한인 업체 이용 후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컴플레인을 걸면 ‘프랑스는 원래이래요.’라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가 꽤나 있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필요할 때는 ‘우리는 같은 한국인’이라고 했다가 번거로운 일이 생기면 ‘여긴 프랑스인데요?’ 라는 식이냐며 말 통하는 한국 업체라고 가격도 더 비싸게 냈는데 한국인 상대로 장사하면서 너무한다고 화를 내게 된다. 반면 업체는 프랑스에서는 진짜 안 되는 일인데 한국에서 통하던 것들이라고 외국 나와서까지 우겨서 해달라고 하니깐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결국 양측 다 ‘같은 한국인이 더 무섭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존 캡쳐글, 불법으로 폭리를 취하는 한국인들의 사례를 접수중이다.

 

물론 진짜 순진한 한국인들만 골라서 사기를 치는 사람도 있긴 하다. 프랑스를 잘 모르는 초기 정착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이전에 언급했던 한인커뮤니티 사이트 프랑스존에서는 한인부동산에게 당한 여러 가지 피해 사례들을 접수하고 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지만 걸려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일 외에는 딱히 먹고 살기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피해를 본 한국인들은 자신도 편법을 이용하려 했다는 점과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면 저렇게까지 하겠어. 라며 신고를 야박하게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행정처리도 오래 걸리고 처벌이 크지 않다는 것도 한몫한다.
게다가 험한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신고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한인사회가 워낙 좁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프랑스존을 이용하고 한인마트를 간다. 그중 대다수는 성당이나 교회를 가고 유학생들이나 워홀러들을 친구로 알고 지낸다. 그렇다 보니 소위 한 두 다리만 건너면 서로가 아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서로 일면식이 없더라도 중고거래를 하거나 집을 구하기 위해 연락을 넣을 때면 친절 또 친절해진다. 문자의 마지막에는 꼭 감사합니다를 넣고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한다.
물론 이건 좋은 예시들이고 가끔 심성이 좋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면 마지막은 ‘파리 한인사회가 얼마나 좁은데^^ 너 얼마나 잘사나 내가 두고 볼게~’로 끝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사실 처음에는 이민자들을 좋은 시선으로만 보지 않았다.
‘부모님이 이민을 선택하셔서 저도 어쩔 수 없이 프랑스인이 되었어요’라는 2세들 외에는 자신이 한국보다 프랑스가 더 낫다고 판단해 이민을 선택한 자발적 이민자들일 텐데 한국이 싫어 떠나놓고 한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았다.
그런데 한 두 달정도 지나보니 그들의 마음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나는 교환학생치고 일찍 입국한 편이었는데 나보다 늦게 입국한 다른 교환학생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소위 이용당했다는 느낌이 몇 번 든 적이 있었다. 처음 혼란스러운 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관계들을 겪고 나니 이곳에서 얼마 있지 않았던 나조차 친절하게 말을 거는 관광객이나 유학생들을 경계한다.
나와 비슷한 사례들은 교회에 가보면 비일비재하다. 파리에는 정착을 도와주는 종교 커뮤니티가 여럿 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정착을 도와주는 그들의 최종목적은 전도다. 그런데 어느 정도 정착한 뒤에 우리교회에 오세요~ 라고 말하면 도움받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제가 왜요? 라고 오히려 되 물으며 전도에 미친 광신도 취급을 한다고 했다. 도움 받을 때만 해도 교회에 성실히 다닐 것처럼 굴던 사람들도 꽤나 많았기에 그들은 점점 이 일에 회의감을 느낀다고 했다.

▲프랑스 정착을 도와주던 한 교회사이트. 현재 너무 많은 신청에 임시로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물론 한국에서도 일방적인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 지속력이 훨씬 짧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외국에 나와서 도움을 받을 때면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답례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민자들 입장에서는 유학생이나 교환학생, 여행객들은 어느 정도 차이는 있어도 결국엔 떠날 사람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진심보다는 목적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인이라고 서로 기댈 생각을 우선 하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다. 여행객이나 유학생들은 ‘나는 어쩌다 프랑스에 와서 잠깐 있다가는 것이니 나보다 프랑스를 잘 아는 이민자들에게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민자들은 고단한 외국 생활 중에 말 통하고 정서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반갑긴 하지만 곧 떠날 사람이니 고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동시에 경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깐 친절하게 구는 한국인을 조심해야 해 라는 말은 이민자들에게도 여행객이나 유학생에게도 모두 해당하는 말이었다.
전 세계 어디를 여행해도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 시대다. 외국 나가서 ‘한국인이라면 조심해야 해’ 가 아니라 ‘무조건 믿어도 돼’가 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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