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든 외국이든 학생 신분이라면 용돈을 받아쓰기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학생들의 숨통을 조금 트여주는 것이 바로 아르바이트다.
프랑스는 학생비자가 있는 경우 주당 20시간까지는 합법적으로 노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동이 합법이더라도 프랑스에 익숙지 않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은 당연히 한인사회를 찾는다. 대다수의 학생이 불어에 능숙하지 못하고 세금 문제나 번거로운 서류처리 등을 이유로 고용을 신고하지 않다 보니 프랑스의 기본 시급인 10~12보다 조금 낮게 8~10유로 정도를 받는다.

흔히들 하는 아르바이트로는 한식당을 꼽을 수 있다. 수시로 채용공고가 올라오고 그나마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박집 스텝이나 과외 아르바이트도 인기가 많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과외가 제일 시급도 높고 편하다. 공급이 많은 영어나 불어보다 상대적으로 공급이 현저히 적은 수학이나 과학 같은 과목은 20유로 내외의 시급에다 당일 현금으로 급여를 지급하기도 한다.

나도 다른 학생들처럼 조금이라도 여유롭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선택한 것은 한인민박스텝. 조건은 월급 500유로에 숙식 제공, 자유시간 보장이었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더라도 숙식이 해결되는 것만으로도 꽤나 좋은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오가는 많은 여행객을 만나며 교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평소 여행 다니며 한인민박을 자주 애용했는데 스텝끼리 서로 끈끈하게 지내고 손님들과 어울리는 것이 꽤나 재미있어 보였다. 지원서를 작성하며 성실함을 열심히 어필했고, 운 좋게 한 번에 채용 될 수 있었다.

▲민박집 스텝 아르바이트를 구한 곳. 한인 민박에 대한 여러 정보가 올라온다.(출처 : http://www.theminda.com/community/index.php)

민박집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체로 스텝들의 일과는 다음과 같다.
아침 7시,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관광하러 나가는 손님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아침 9시, 아침을 먹고 퇴실한 손님들의 침구류 정리 및 전반적인 숙소청소를 한다.
오후 2시, 저녁에 쓸 재료를 위해 마트에 다녀온다. 손님들의 숫자나 그 날의 메뉴 등에 따라 필요한 재료와 양이 상당히 유동적이기에 미리 구입해두지 않고 마트를 자주 가는 편이다.
오후 5시, 마트에 다녀온 뒤 저녁을 만든다. 저녁은 아침보다 메인 메뉴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저녁 7시, 석식을 제공하고 정리한다.
저녁 10시, 손님들끼리 맥주 한 잔 하는 시간. 스텝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손님들에게 약간의 말동무를 해준다.
밤 12시, 전체적으로 소등을 하고 다른 투숙객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관리한다.

일단 여기까지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숙식을 제공한다는 것은 민박집 상시 대기를 의미했다. 체크인과 숙소안내는 수시로 이루어졌고 밤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이용한다면 새벽에도 픽업을 나가야 했다. 라면을 끓이는 것이나 빨래를 하는 것, 교통권이나 입장권 등을 구입하려는 손님들의 편의를 돌보기도 해야 했다. 여러 사람이 오고가는 탓에 계속해서 신발 정리도 해야 했고, 버스를 타고나가 사장님 혹은 이모님의 개인적인 잔심부름도 하게 됐다.
숙소를 제공 받은 탓에 휴식처가 곧 근무지인 셈인데 아무래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또 자유롭게 개인 시간을 가지라고는 적혀있는데 마트에 장보러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외출은 거의 어려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외출을 못 하게 하는 건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손님 없으면 상황 봐서 적당히 쉬어’ 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 것으로 생각한다. 휴식이지만 지하에 있는 스텝 방에서 대기하다가 자그마한 소리라도 나면 1층으로 달려 올라가야 했다.

손님들과 어울리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또래가 모여 같이 노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하소연과 자기자랑을 들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무조건 웃고 맞장구쳐 줘야 하는 근무의 연장이었다.
게다가 99% 관광객의 코스가 비슷하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말은 정말 한정적이었다.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바토무슈 유람선을 탔는데 너무 추웠어요’, ‘에펠탑 야경 너무 예뻐요’,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 앞에 사람 너무 많았어요’를 들어야 했다.
나에게는 일상이 돼 감흥이 없는 파리지만 그들에게는 설렘 그 자체일 테니 진심으로 공감하고 들어주고 싶었지만 점점 자동 응답 기계처럼 되어갔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해 새벽 1시까지 일해야 하는 하루가 너무 길다 보니, 일주일이 한 달 같았다. 일주일간의 수습 기간을 겪고 난 후 고민해보니, 민박집에만 있어야해 파리를 알기 힘들고 교환학생의 목적과는 많이 달라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소소한 용돈 할벌이를 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직접 요리를 해서 반찬을 팔거나 집수리를 도와주는 등 소규모의 일들이다.

다른 업종의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일은 할 만하냐고 묻자 좋은 교포분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외국에서의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이니만큼 실수에 절대 관대하지 않다는 것이 전반적인 의견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혼난 적은 없는데 그만둔다는 말 한마디에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나오게 됐다.
일을 그만두고 나니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삶이 시작됐지만 짧게 있어야 하는 파리니만큼 몸과 마음이 편한 것이 한결 낫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고소득이 아니더라도 무슨 일이라도 하다 보면 나 한 명 정도는 어떻게든 먹고 살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외국에서의 삶을 꿈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삶은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기에 이방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누구보다 더 독해져야 했을 그들을 생각하니 한국이 몹시 그리워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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