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 속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수많은 소수자들이 있다. 성 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미혼모 등이 그에 해당한다. 본지는 네 번째로 미혼모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많은 차별과 고통을 겪는 미혼모의 이야기와 이들을 위한 복지 대책을 담았다.

 

“미혼모를 위한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을 만들어주세요.”
두 달 전 한 고등학생이 올린 이 청와대 국민 청원글은 22만명의 동의를 얻어 정부의 공식 답변 대상이 됐다. 미혼 한부모 양육 지원을 촉구하는 이 법안에 문재인 대통령은 “아이를 양육하는 일은 국가와 사회가 함께 져야 할 책무이자 ‘아동의 권리’”라며 복지 대책 외에도 사회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너희 엄마 미혼모야?”

실제 미혼모가 겪는 상황은 어떨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미혼모 협회 ‘인트리’를 설립한 최형숙 대표를 만났다. 35살, 당시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긴 최 대표는 ‘내 인생에서 마지막 아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출산을 선택했다.


하지만 용기 있는 그의 결심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냉담하기만 했다. 친구들과 가족들은 ‘미친 짓’이라며 말리고, “왜 아이 아빠에게 피해를 주냐”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부모님은 그를 7년 동안이나 만나주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그가 “성적으로 문란했다.”, “남자가 유부남일 것이다.”라며 수군거렸다. 결국, 그는 당시 운영하던 미용실 문을 닫았다. 미혼모가 운영하는 미용실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매출이 떨어져 영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혼모의 아이들도 미혼모 당사자 못지않은 고통을 받고 있었다. 최 대표는 당시 8살이던 아이와 함께 미혼모 관련 영화에 출연했다.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한 취지였지만, 영화가 개봉한 후 아이는 고통에 시달렸다. 아이는 친구들이 “야, 너희 엄마 미혼모야?”라며 자꾸 물어 스트레스성 폭식증에 걸렸다. 하루는 엄마가 미혼모라며 괴롭히던 형이 던진 얼음덩어리에 맞아 눈이 퉁퉁 부어 오기도 했다.

그는 “이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며 우리나라의 다문화, 다양성 교육이 유명무실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발목을 잡는 것은

임신 당시 미혼모 시설을 이용했다는 그에게서 현실적인 미혼모 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주거가 불안정한 미혼모가 많다고 설명했다. 부모가 출산을 반대해 집에서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미혼모 시설의 열악한 면에 대한 질문에 그는 “시설 자체가 열악하다기보다는 불편한 점이 있다”며 “공동생활이다 보니 개인의 자유가 없다는 점에서 어린 친구들이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미혼모의 발목을 잡는 것은 사회적 편견뿐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다. 최 대표가 당시 국가로부터 받은 양육비는 12만 원이었다. 12만 원은 분유를 사기에도 빡빡한 돈이었다. 그는 “분윳값도 안 되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며 현실을 반영한 양육비가 지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미혼모에 대한 인식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편견이 없어져야 미혼모가 학업도 이어가고, 취업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2018년인 현재에도 아이 밥을 먹이기 위해 굶는 엄마들이 있다”며 특히 미성년자 미혼모에게 많은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가족 형태 중 하나일 뿐

해외의 미혼모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특히 유럽의 몇몇 국가의 경우에는 정책부터 판이하다. 독일은 미혼모라는 단어 대신 ‘단독양육모’로 그들을 지칭한다. 독일은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10대 단독양육모의 교육을 지원해 청소년 출산에도 어려움이 덜하다. 대부분의 주(州)는 모성보호법에 따라 임신에 의한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하거나 휴학 처리를 해준다. 민법에서는 생부가 단독양육모에 대한 부양의무를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양육비 지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에는 정부가 단독양육모에게 대지급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프랑스의 다양한 가족 형태는 미혼모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에 일조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예로 결혼과 단순 동거의 중간 형태인 시민연대계약(PACS)제도가 있다. 시민연대계약은 동거를 원하는 커플이 동거계약서를 지방 법원에 제출하면 관계가 법적으로 성립되는 제도이다. 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접한 아이들은 정상적 가족 형태는 ‘두 부모와 아이’로 구성된다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프랑스는 모든 형태의 가족에 동일하게 임신부터 양육까지 국가에서 지원해준다. 출산과 육아를 국가가 함께 책임진다는 믿음과 차별 없는 시선 덕분에 프랑스의 혼외 출산율은 56.7%(2012년)에 이른다.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을 시행하고 있는 덴마크는 한부모가족 정책을 어느 국가보다도 높은 수준에서 시행해왔다. 덴마크에서는 1930년대부터 ‘어머니의 도움(Modrehjaelpen: Mothers Help)’이라는 조직이 결성될 만큼 미혼모를 위한 정책 및 지원이 발달해 있다. 이 조직은 10대 미혼모를 돕기 위해 결성돼 현재에도 그들의 교육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적극적인 노동 시장정책과 가족 정책을 바탕으로 미혼모 또한 자녀를 양육하는 여러 부모 중 한 명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은 10대 미혼모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그중 TAPP(10대 양육 프로그램)는 임신으로 인해 학교를 중퇴하는 것을 방지하고, 임신 기간에 학업의 수행을 돕기 위한 제도가 있다. 또한 미국은 ‘뉴 비기닝스(New Beginnings)’라는 미혼모 시설도 갖추고 있다. 이 시설에서는 담당 의사가 없는 입소자에게 의사를 배정해주고, 출산 전 태아를 위한 진찰도 제공한다. 미혼모들의 미래를 위해 목표를 정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양육비, 눈 가리고 아웅

미혼모가 친부에게서 양육비를 받는 방법엔 어떤 것이 있을까. 현행 가사소송법은 비양육자의 양육비 지급의무를 강제하는 3가지 규정을 두고 있다. 첫째로 양육비 직접지급명령이 있다. 이는 비 양육자가 직장을 다닐 경우, 해당 직장 대표에게 비 양육자의 월급에서 양육비를 공제해 양육자에게 직접 지급하게 하는 제도이다. 둘째로는 담보제공명령이 있다. 비 양육자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우려가 있을 때 약 2~3년의 양육비를 담보로 제공 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의무 불이행에 대한 제재이다. 여기에는 비 양육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 지급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30일 정도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하는 ‘감치’와 ‘과태료’ 부과 등이 있다.
이혼 소송 전문 노경희 변호사는 “만약 비 양육자가 급여소득자가 아니라 자영업자인 경우 양육비 직접지급명령을 내릴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소득신고를 성실히 하지 않거나 본인 명의의 재산을 보유하지 않은 경우, 담보제공명령도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에서 먼저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한 뒤 비양육자에게 돌려받는 대지급 제도인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제도’를 일부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최대 9개월 동안 매달 20만 원씩 지원하는데 그쳐 미혼모의 금전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따른다. 또한, 이를 지원 받기 위해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생계급여를 받아서는 안 되며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생계지원을 받은 후에도 생활이 어려움을 증명해야 한다. 이외에도 까다로운 절차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이를 보완한 ‘히트 앤드 런 방지법’ 도입을 논의 중이다.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은 현재 덴마크에서 시행하는 양육비 대지급 제도로 회수되지 못한 양육비는 세금으로 충당한다. 노 변호사는 “생활고를 겪는 미혼모들과 그 자녀의 복리를 위해 양육비 대지급 제도를 시행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재정적인 한계도 무시할 수 없다”며 “극빈층과 차상위계층을 우선 적용대상으로 해 단계적으로 양육비 대지급 제도를 시행하고, 아울러 비 양육자에 대한 구상권의 실효성을 높일 방법을 강구해야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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