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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에서 법 개정까지, 협상의 달인 홍영표 원내대표

기사승인 [1600호]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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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머니투데이.

1600호를 맞아 홍영표(철학78)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군 복무 후 노동운동의 길을 선택했다. 평범한 대학생이 문제의식을 넘어 노동운동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초심을 잃지 않고 결국 세상을 바꾼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나라는 과로 사회다. 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노동시간은 평균 2,02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3위를 기록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법정노동시간을 ‘7일에 52시간’으로 줄이는 데 합의했고, 올해 2월 개선된 근로기준법은 국회를 통과해 법이 개정됐다. 이때 활약했던 인물이 당시 환경노동위원장이었던 홍영표(철학78) 국회의원이다. 그는 어떻게 논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을까.

저항을 통해 얻은 성취

홍영표 동문의 대학 시절은 군부독재가 절정일 때였다. 정부에 대항해 시위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감시를 피해 숨어야만 했다. 그는 “체제나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즉각 형무소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감상이 취미였던 그는 음악감상실에서 만난 사람들에 이끌려 새로운 사상을 마주했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김지하 시인의 시와 국가권력을 비판하는 이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으며 그는 “왠지 숙연해지고 의젓해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일들을 겪으며 나도 시위 현장 속 학생운동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계속된 시위에도 굳건한 독재정권을 보며 그는 “학생들만의 시위로는 결코 군사독재를 물리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노동자를 의식화해 혁명적 노조를 결성하기 위한 ‘위장취업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도 이에 동참하기로 마음먹었다. 노동자의 몸을 만들기 위해 건설 현장에서 일했고, 기능사 자격증을 따려 고시 공부 못지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대학생의 삶에서 멀어지는 것에 대한 걱정보다 노동자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더 컸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위장취업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았다. 수차례 실패 끝에 그는 대우자동차 용접공으로 위장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때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상여금 체납,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의 통상임금이 아닌 기본급 기준 지급, 연장근로의 50% 가산 미지급, 노동자와 사무직 사원의 차별적 대우 등 각종 부당한 대우에 불만이 누적된 상태였다.

위장취업자들의 주도로 임금인상 투쟁이 일어났고 노조 민주화를 요구하는 조합원들이 대거 대의원으로 당선됐다. 홍영표 동문도 노조 대의원 선거에서 차체부 대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 대우자동차 파업 사건이 발생했고 그는 단독으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 임금교섭을 진행했다. 일개 노동자가 단독으로 대기업 회장과 협상을 한 것이다. 몇 차례 진통 끝에 그는 노동자와 회사 모두 동의하는 최종절충안을 만들어냈다. 전두환 정권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파업농성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갈등을 메우는 용접공이 되다

이렇게 그는 소통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갈등을 메워왔다. 그는 “정치 또한 용접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무총리실 시민사회 비서관 시절 방폐장 문제, 혁신도시 문제, 저출산 고령화 문제 등 사회갈등과 문제를 땜질하고 수리하는 일을 했다”며 “나는 언제부터인가 갈등을 메우는 이 시대의 용접공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주 52시간 근로기준법 논의 때, 이런 그의 모습이 잘 드러났다. 2003년 주 5일 근무제가 시작됐지만, 노동부의 행정해석은 주 68시간 근로까지 허용했다. 2013년부터 근로시간 정상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됐지만, 기업 측의 반발로 무산됐다. 2017년에는 여야 3당 합의를 이뤘으나 일부 의원들의 입장차로 입법이 이뤄지지 않았다. 진전없는 논의만 진행될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용접기를 놓지 않았다. 그는 “환경노동위원장 임기 마지막을 앞두고 반드시 근로시간 정상화를 이뤄내고 싶었다”며 “여야 의원들의 갈등이 격해져도 정회를 하며 조율을 했다”고 말해 소통의 용접공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모르지만 밤새워 끝까지 협의하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동료 국회의원들을 독려했다.

총 7차례의 정회 끝에 자정이 넘어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조율을 마칠 수 있었다. 이후 각 당 원내대표의 최종승인이 필요한 상황에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계속된 시도 끝에 전화에 성공해 합의된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그는 “‘노동시간 정상화로 국민들께 저녁을 돌려드리고 싶다’는 의지 하나로 끝까지 추진할 수 있었다”며 소회를 밝혔다.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말

그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그는 “행동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플라톤도 ‘정치참여 거부에 대한 불이익 중 하나는 당신보다 하등한 존재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고대 아테네 페리클레스는 ‘당신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가 당신을 자유롭게 두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가 청년세대의 고충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는 “요즘은 청년 취업이 어려워서 취업에 도움이 되는 대학 수업을 듣는다고 알고 있다”며 “하지만 청년이기 때문에 이 시대가 원하는 일에 더 큰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덧붙여 그는 정당에 가입하거나 선거에 참여하는 방법과 관심 있는 분야에서 활동해볼 것을 추천했다. 그는 “젊은이의 패기와 혈기로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탐구해 할 수 있는 일과 꼭 해야 할 일을 찾아 행동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더불어 “대학생 여러분들이 마주할 사회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곳이 되도록 저도 국회에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흔들리지 않고 결심을 이뤄온 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힘이 되길 바란다.

우성제 기자 wosj911@dgu.edu

<저작권자 © 동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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