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국문문창 18

생각은 많을수록 좋지 않았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았고 새롭게 파생된 생각은 나를 더 공허하게 만들었다.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과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생각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타인과 생각을 공유할수록 남들이 품었던 개인적인 생각들까지 머릿속에 추가되어 점점 가라앉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실제로는 그 생각들이 얼마나 단단하고 무거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의 피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고집스런 생각들은 필요에 의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을 멈출 수가 없어 매일 밤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나는 대학에 들어온 뒤로 전기장치의 전원을 끄는 것처럼 생각회로의 스위치를 순간적으로 꺼버리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나무가 떠올랐는데, 결실을 맺은 열매들이 밑으로 수직 낙하하는 상상을 했다. 다 익은 열매들이 떨어진 뒤 앙상한 몰골을 하고 있을 거대한 식물과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것은 흡사 나와 닮아있었다. 사소한 고민으로 생기는 오래된 생각들이 천천히 익어가고 밑으로 떨어질 때까지도 나는 새로운 생각의 열매들을 가지 끝에 매달기 바빴다. 사실 그 무게를 견대내기가 버거워 위태로웠지만 오래된 생각들이 떨어지면서 바닥에 남긴 말간 자국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쳐다본다. 정작 아무것도 매달려있지 않은 나무는 이젠 너무 허전할 뿐이다. 우리는 이처럼 이런저런 생각들이 타인에 관한 것이든, 나 자신에 관한 것이든 간에 생각을 비우거나 과감히 덜어낼 방법조차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복잡한 생각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는 없을까?

 

현실에서 벗어나자. 이것이 내가 나에게 내린 가장 극단적이고 현명한 결론이었다.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살고 있는 실증의 세계에서 벗어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에는 여행이 있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어제의 아침과는 다른 새로운 방문을 여는 것이다. 내가 혼자 처음 여행을 떠난 곳은 충청남도 태안이었는데, 홀로 떠난 여행에서 마주한 태안바다는 모든 생각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기온과 습도를 잊지 못한다. 그 공간에 있었던 것은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기억이 떠오를 때면 고리타분한 생각들이 범람되어도 노곤하고 평온한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내 주위에 몇몇 사람들은 생각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 자주 설명을 하곤 한다. 누군가는 내게 남들과 다른 차별적인 생각들을 많이 가지는 것이 결과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나침반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아무생각 없는 휴식이 왜 필요한지, 일상이라는 연속적인 장면 속에서 여백이 왜 필요한 것인지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필요하지 않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필연이든 우연이든 복잡한 생각들은 새로운 고민으로 연결되고, 모든 생각들은 결국 너무 오래돼서 언젠가는 밑으로 떨어지지만 우리는 여전히 앙상한 가지에 또 다른 생각들을 매달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방식이라면 잠깐 동안이라도 마음을 비우고 어디론가 떠나 생각할 힘을 잠시나마 잃어보길 바란다. 우리는 생각할 힘을 잃는 것에 대해 겁을 먹지만 생각하는 에너지가 소실될 때 비로소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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