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희 전쟁없는 세상 병역 거부팀

한국에서 상상하기 힘든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양심에 따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에게 무죄 취지의 파기 환송 판결을 한 것이다. 이는 언젠가는 내려질 판결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양심의 자유가 규정되어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각자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자유권을 훼손하면 자유의 기본 이념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대법원은 철저히 헌법 원칙에 따라 판결을 했다. 지난 6월, 이미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항목이 없다는 이유로 병역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한 뒤, 대법원은 수개월 뒤인 11월 1일 병역법위반 사건에 대해 무죄 취지의 선고를 했다. 결국 이 사건에 관한 판결은 고등법원에서 이루어질 전망인데, 고등법원에서는 대법원의 취지에 따라 무죄 판결을 할 것이다.


다만 고등법원에서 무죄를 받는다 해서 해당 피고가 병역 면제를 받지는 않는다. 한국 병역법은 군 미필자를 38세까지 징병할 근거가 있다. 그러므로 무죄를 받는다 해도 그는 미필자이기 때문에, 병무청은 다시 입영 통지서를 발송한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까지 국회나 정부가 대체복무를 제도화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므로 당 사건의 병역거부자는 내년 중으로 대체복무를 이행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해당 사건의 오 모(34)씨는 수년을 재판으로 보내고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병역을 마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이제 한국에서 자유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근대 이후 인간은 자유로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로써 인간은 절대자의 명령 없이 자율성을 담보 받았다. 선험적으로 주어진 자유를 누리는 것은 인간의 권리다. 과거에는 이러한 논의가 불가능했다. 개인은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었고, 국가가 부여한 가치 체계 안에서만 행동해야 했다. 군사독재 시절 많은 이들이 이를 벗어나려다가 감옥에 갔고, 국제 사회는 이를 “양심수”라 불렀다. 자유국가는 사상과 관점이 다른 사람들을 법의 테두리 밖으로 밀어낼 근거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양심이 다른 이들의 양심과 다른 것도 아니다. 사회 일각에서 불필요한 비양심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비해, 헌법은 군대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양심은 그다지 묻지도 따지지 않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군대에 가지 않겠다거나 갈 수 없다는 사람들은 이중, 삼중의 필터링을 거치는 반면, 군대에 가려는 사람들은 학력과 신체적 조건만 맞으면 양심을 검증받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양심보다 가려는 사람들의 양심을 검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랬다면 쿠데타도 유신 헌법도 등장하지 않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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