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진희·원동우 기자.

돈만 있으면 24시간 내내 불가능한 것이 없다. 한국의 배달, 택배, 편의점, PC방, 카페, 택시 등 24시간 문화의 ‘편리함’은 이미 세계 최정상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 이면에는 24시간 노동하는 야간 노동자들이 있다. 우리의 밤을 책임지는 야간 노동자들의 삶은 어떨까?

그들은 밤에도 쉬지 못한다

야간 노동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근로를 말한다. 야간 노동 문화는 야간 소비층을 공략하는 업주들과 야간 노동을 찾는 노동자들의 수요가 맞물려 활발하다.
아르바이트(이하 알바) 포털 알바천국의 조사에 따르면, 야간 노동을 하는 이유로는 ‘주간 알바 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서(29.4%)’라는 답이 가장 많았고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어서(28.4%)’라는 답이 뒤를 이었다. 대학생 박수영 씨(20)는 “주간에는 학업을 수행하느라 바쁘고, 수업이 끝나면 시간이 늦어져 야간 알바를 선호한다”라고 말했다.
‘주간 알바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도 야간 노동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경석 공인노무사는 “청년 실업률, 경기 불황으로 인한 폐업률 증가 등의 영향으로 청년들이 알바 구직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답했다. 이렇듯 알바 구직난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야간 알바를 찾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높은 임금 또한 금전적 여유가 부족한 학생들이 야간 노동을 하는 이유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상시노동자가 5인 이상 노동하는 점포의 경우 통상임금의 1.5배 이상을 가산해 야간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학생 김 모 씨(20)는 “보통 주거비, 생활비, 학원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야간 노동 선택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돈이 정말 급한 친구들은 휴학을 하고 주간 알바와 야간 알바를 병행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청년들은 밤에도 일할 수밖에 없다.

건강과 대인관계 ‘적신호’

인간의 몸은 24시간 주기에 맞춰 낮에 활동하고 밤에는 잠을 자도록 설계돼있다. 이러한 생체 리듬을 거슬러 밤에 일하는 야간 노동자들은 건강상의 문제를 겪는다. 특히 야간 노동자들은 날마다 부족하고 일정치 못한 수면시간 때문에 만성 수면장애를 겪기 쉽다. 우리대학 경비 노동자 A 씨는 야간 근무일에 오후 6시부터 오전 8시까지 14시간 동안 근무하고 있다. A 씨는 “다음날도 야간 근무인 경우 5시간 정도밖에 못 잔다”고 답했다. 한편 PC방 야간 알바를 하고 있는 대학생 임 모 씨(21)는 “피곤해서 수업 시간에 졸게 되고, 수면 부족으로 몸이 망가지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수면장애와 더불어 야간 노동자들이 겪기 쉬운 건강 문제는 ‘위장장애’다. 이는 야간 노동자의 경우 식사 시간이 불규칙하고 늦은 밤에 끼니를 때우기 때문이다. A 씨는 “식사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며 “경비 업무 특성상 대기 상태를 유지해야 해서 20분 내로 빨리 식사를 마쳐야 한다”고 답했다.
야간 노동은 정신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 ‘2017년 대한의학회지 7월호’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야간 노동자의 우울증 발병률은 통상 노동자보다 43% 더 높았다. 또한 ‘수면장애를 겪는 야간 노동자의 경우 자살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야간 노동자들은 대인관계에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주간에 잠을 자고 야간에 활동하는 이들의 생활방식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임 씨는 “낮에는 학교에 가고 밤에는 알바를 해 집에 늦게 들어갈 때가 잦다”며 “가족을 잘 보지 못해 거리감을 느낄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야간 노동자들은 밤낮이 바뀐 생활방식으로 인해 가족, 친구, 지인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며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범죄의 표적이 되는 야간 노동자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야간 노동자들은 이 대중적인 가사를 가볍게 흥얼거리며 넘길 수 없다. 심야에 발생하는 많은 흉악범죄에 야간 노동자들이 무방비로 노출돼있기 때문이다. 특히 편의점, 술집 등 24시 영업장은 범죄로 이어지기 쉬운 상황에 처한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는 대학생 김 모 씨(20)는 “야간에 술에 취해 온 손님들이 많아 매번 두려움을 느꼈다”며 “취객이 난동을 부려 제지하려고 하면 삿대질하며 욕설을 하기도 했다”고 답했다. 한편 술집에서 야간 알바를 하는 대학생 문 모 씨(20)는 “위협적인 상황은 아직 없었지만 술에 취한 손님과 눈만 마주쳐도 무서운 마음이 든다”며 “하지만 알바 자리가 야간 시간대에 훨씬 더 많아서 돈을 벌려면 야간에 일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렇듯 야간 노동자들은 ‘혹여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 속에 살아간다.
야간 근무 시 발생하는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지만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실질적 대비책은 미비한 상황이다. 김 씨는 “야간 노동을 하기에 앞서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고,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보호 장치도 따로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알바 노조는 ▲야간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 강화 ▲야간 영업점 긴급 신고 시스템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한 금태섭 국회의원은 야간 알바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킨 강서구 pc방 사건을 계기로 관련 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는 바로 야간 알바 노동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야간알바 보호 4법’이다.
이와 같은 대책의 실질적인 도입으로 야간 노동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야간 노동자들이 “오늘 밤도, 내일 밤도 더는 무섭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말이다.

노동 감수성이 필요해

그렇다면 현재와 같이 한국 사회에 야간 노동이 활발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국노동연구원 홍민기 선임연구위원은 “누군가의 편리함을 위해 누군가는 불편한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타인 노동에 대한 존중이 많이 부족하다”며 “야간 노동자의 입장을 고려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야간 노동자들이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사정을 헤아려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타인 노동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야간 노동을 규제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도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국가들은 야간 노동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홍민기 연구원은 “선진국은 야간 노동을 엄격히 제한한다”며 “경찰, 의사 등 사회 안전과 직결된 직업이나 국가 기관, 전력 수급 등 관련 직종만 야간 노동을 허용한다”고 언급했다. 실제 스위스나 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상점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이는 야간 노동을 제한하고자 하는 공동체적 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홍민기 연구원은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경우처럼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야간 노동이 사라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24시간 서비스에 현혹돼 야간 노동자들의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이제는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편리함에서 벗어나 사회의 이면을 살피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야간 노동에 대한 공동체적 의식이 고취돼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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