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랄 인증 받은 중국 음식 … ‘이해’와 ‘타협’이 중요


본지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다문화 사회에 대해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그 세 번째 기사로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대표적인 다문화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모습을 살펴봤다. 서로 다른 인종과 종교가 공존하기 위한 노력인 할랄푸드에 대해 알아봤다.

 

무슬림의 수는 전 세계 인구의 25%에 달하는 16억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에 주재하는 무슬림 인구도 23만 명에 달해, 이제 한국에서도 ‘할랄’ 인증 마크가 붙은 식당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할랄’ 인증이 없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무슬림을 배려한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중국인과 이슬람 신자인 말레이인이 공존하는 다문화 국가다. 돼지고기라는 충돌점을 가진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한국의 할랄 인증 마크.

 

말레이인과 중국인의 차이점, 돼지고기


말레이시아에서 돼지고기는 말레이인과 중국인의 종족적 차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다. 말레이시아의 인구 중 약 60%를 차지하는 말레이인은 대부분 이슬람 신자다. 이슬람에서는 돼지고기 섭취를 금지한다. 반면 약 25%를 차지하는 중국인의 주 식재료는 돼지고기다. 따라서 말레이인과 중국인이 공존하는 말레이시아에서 돼지고기의 포함 여부를 알 수 있는 ‘할랄’ 표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할랄(Halal)은 아랍어로 ‘허락된 것’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알라)신이 허락했다는 의미다. 반대말은 ‘허락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의 하람(Haram)이다. 할랄 음식이란 주로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고, 이슬람식 도축방법으로 도살한 짐승의 고기로 만든 음식을 뜻한다.


할랄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이슬람법에서 금지한 동물이 들어가지 않아야 하며, 모든 동물은 이슬람식 도축법인 다비하(Dhabihah)식으로 도살돼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할랄 조건을 충족하지 않은 식품에 접촉하거나 가깝게 놓여서도 안 된다.


특히 돼지는 이슬람법에서 가장 강력하게 규제되는 동물이다. 이슬람법 경전인 쿠란에서 먹을 수 없는 동물로 유일하게 명시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쿠란은 돼지를 금기했을까?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는 그 이유를 생태학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이슬람교가 나타난 아랍의 초원 지대는 돼지를 키우기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과 돼지가 곡류를 먹는다는 점에서 인간과 식량 경쟁을 해 미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무슬림에게 하람인 돼지는 매우 불결하고 오염된 것으로 인식된다. 실제로 무슬림은 먹은 음식에 돼지가 조금이라도 들어갔거나 돼지 육수가 사용됐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게워내기도 한다. 콜라겐과 젤라틴 역시 돼지가 아닌 해산물에서 추출하거나 식물성으로 대체한다. 돼지를 조리했던 기구를 사용하는 것과 음식을 돼지고기와 같은 장소에 보관하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된다.


‘공존’을 위해 필요한 할랄


말레이시아는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이슬람이 국교인 동시에 동남아시아 최대 돼지사육 국가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돼지는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중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또한 돼지는 중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육류기도 하다. 실제로 중국 음식의 대부분에 돼지고기와 돼지기름이 사용되며, 그들은 돼지의 사용이 음식의 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쿠알라룸푸르의 시장 거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음식도 돼지고기와 돼지 뼈 육수를 사용하는 중국 음식 바쿠테(肉骨茶, Bah Kut Teh)였다. 길거리 음식점뿐만 아니라 바쿠테 전문 레스토랑도 여럿 있었다.

▲바쿠테(肉骨茶, Bah Kut Teh ).
▲쿠알라룸푸르 길거리에서 파는 바쿠테(肉骨茶, Bah Kut Teh).


그렇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중국계와 같이 생활하는 말레이인에게 ‘할랄’인증은 굉장히 중요하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서 중국 음식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식당이 ‘할랄’로고를 문 앞에 표시해뒀다. 길거리 음식점들 역시 할랄 로고를 붙이지 않았어도 ‘No Pork(돼지고기 없음)’ 표시를 내세웠다. 음식 속 돼지고기 사용 여부에 의심을 갖는 말레이인을 위함이다.

▲NO PORK를 표시한 쿠알라 룸푸르의 한 길거리 음식점.


할랄 인증 로고는 식당뿐 아니라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쿠알라룸푸르의 한 슈퍼마켓에 들어가니 진열된 가공식품 대부분에 할랄 인증 마크가 부착돼 있었다. 육류와는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우유, 커피, 빵 등 거의 모든 음식과 음료가 할랄 인증을 받았다.


한편 슈퍼마켓의 한구석에는 비할랄(Non-Halal)이라는 표지가 크게 붙어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비할랄 코너에서는 돼지고기나 돼지를 사용한 가공식품들이 즐비해 있었다. 돼지고기 섭취를 즐기는 중국인들을 위해 마련해 둔 것이다.

▲NON-HALAL을 표시한 쿠알라룸푸르의 한 식료품점.


말레이시아에서 할랄 인증은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현재 말레이시아에서는 돼지고기 요리를 일체 취급하지 않는(Pork-Free) 정책이 시행되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고급 호텔 식당과 새로 지은 쇼핑몰의 음식매장에서 이런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말레이인의 경제력이 증가함과 동시에 이슬람 신자 외국인들을 유치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고급 레스토랑뿐 아니라 패스트푸드점과 외국계 식당에도 할랄 인증이 표시돼 있었다. 말레이인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다. 유명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에서는 히잡을 쓴 직원들이 음식을 조리하고 있음은 물론 모든 메뉴에 할랄 인증 마크가 붙어있었다. 대표적인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에서도 할랄 인증 표시를 볼 수 있었다.

▲맥도날드의 할랄 표시.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할랄 인증을 받은 한국의 불닭볶음면.

할랄 중식의 출현


말레이시아의 할랄 인증제도 확산에 대해 중국계 역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돼지고기 사용을 고수하는 식당이 있는 한편, 적극적으로 할랄 인증을 받아 무슬림도 고객으로 포섭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쿠알라룸푸르의 대형 쇼핑몰 내 고급 중식 레스토랑. 돼지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중식이지만 모든 메뉴에는 돼지고기가 빠져있었다. 딤섬 몇 종류를 주문하고 직원에게 정말 모든 메뉴에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이 쇼핑몰 안의 모든 레스토랑은 할랄 인증을 받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말레이인과 중국계 사이의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영역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해당 레스토랑에서 히잡을 쓴 여성들도 볼 수 있었다.

▲할랄 인증을 받은 중국 음식 딤섬.


이처럼 할랄 중식의 출현은 두 집단 간 굳건했던 경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른 종족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일정 부분 타협하는 것.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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