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는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실어 낯선 미국 땅으로 떠났다.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게임기나 사달라고 떼를 쓰던 전형적인 ‘초딩’이었다. 부모님 옆에서만 살던 ‘초딩’이 외국인 홈스테이 가족과 함께 낯선 음식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 낯선 곳에서의 경험은 나를 성장시켰고 덕분에 ‘초딩’ 티를 벗을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어떤 환경에서든지 적응할 자신감도 얻었다.

그렇게 20살이 되며 아이에서 어른으로 레벨 업한 줄로만 알았던 나는 평범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22살에 입사한 신문사는 나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신문사에서 수습기자로서의 생활은 나의 그런 자신감을 무력화시켰다. 신문사에서의 경험은 지금까지 그 어떠한 생활과는 또 다른 시간이었다. 내게 진정한 어른이 맞는지를 묻는 일종의 ‘어른 통과 테스트’ 같은 느낌이었다.

수습기자로서 처음 기사를 맡았던 때였다. 첫 기사는 다름 아닌 ‘인문학을 탐하다’ 코너였다. 영화나 책을 바탕으로 느낀 점을 문화칼럼 형식으로 써야 했다. 다른 기자들과 달리 별다른 취재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처럼 글이 써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닌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주변 동료들의 힘을 빌려 간신히 기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분에게 전화를 걸어 민감한 사안을 질문해야 할 때도 있었다. 오랫동안 진행된 생리공결제 논의에 대한 학교 측의 입장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가 매우 조심스러웠다. 협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귀에 땀이 나도록 전화를 돌리고,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힘들었지만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최선을 다했다.

수습기자로서 신문사에서의 경험은 나이만 들면 어른이 된다고 믿던 나의 환상을 철저히 부쉈다. 이제 ‘수습’자를 떼고 정기자가 된다. 하지만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수습’자를 뗐다고 진정한 기자가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난 오늘도 ‘진짜’ 기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임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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