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재 다르마칼리지 교수

최근 들어 인류세가 세계적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몇몇 수업에서 “인류세가 뭔지 아세요?”라고 물었지만 대답하는 학생은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국내 사이트는 드물었고, 그나마 인류세를 간단하게 소개하는 정도였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높은 관심과 확연히 대비된다는 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래서 화두를 던져 본다. 왜 우리는 인류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
  인류세란 새로운 지질시대를 부르기 위해 고안된 학술 용어다. 지질학자들은 현재의 지질시대를 “신생대, 제4기, 홀로세(충적세)”라고 한다. 그러니까 인류세란 홀로세가 끝나고 새로운 지질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이 용어를 처음 쓴 것은 1980년대 미국의 생물학자 스토머였지만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대기 화학자 크뤼천에 의해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크뤼천은 인간의 영향력이 자연의 거대한 힘들과 견줄 정도로 막강해져서 지구 시스템에 커다란 교란을 초래했고, 그로 인해 인류세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인류세 승인을 두고 지질학자들이 과학적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동시에 인류세의 도래와 인류의 미래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도 커지고 있다.
  사실 인류세가 아니더라도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문제로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다. 생태계 교란을 비롯하여 지구의 이상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세먼지, (미세) 플라스틱, 바다의 산성화 등 우리를 괴롭히는 환경 문제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어쩌면 인류세는 이런 모든 환경문제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인류세와 관련하여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인류세를 단순히 생태계 교란이나 파괴와 등치시켜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호주의 공공윤리학 교수 해밀턴은 최근 출간된 『인류세』에서 인류세를 지구 시스템의 ‘균열’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제대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지구 시스템이란 지구가 복잡하고 진화하는 단일한 시스템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지구 시스템은 대기권, 생물권, 암석권, 수권 등이 상호작용하는 총체적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지 생태계를 단순히 모아놓은 개념은 아니다. 또한, 시스템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것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변화했다는 뜻이다. 즉, 인류세의 지구 시스템은 홀로세의 지구 시스템과는 완전히 다른 작동원리를 따른다는 뜻이다. 그러니 홀로세에서 통하던 과학지식으로는 인류세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인류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알기 힘들게 된 셈이다.
  한편, 현재 인류세를 대하는 사회적 입장은 크게 나뉜다. 한 편에는 인류의 탐욕이 생태계를 파괴하여 스스로 궁지로 내몰렸다는 위기의식이, 그 반대편에는 지구 시스템을 변화시킬 정도로 인류의 힘이 세졌다는 뿌듯함이 자리 잡고 있다. 가이아의 복수를 말하며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비관주의와 기술발전의 놀라운 역사를 강조하며 “환영, 인류세!”를 외치는 낙관주의가 맞서는 형국이다. 정작 문제는 양쪽 입장 모두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기 힘들어 보인다는 점이다.
  어쩌면 인류는 불안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인류세라는 전인미답의 길로 이미 들어섰는지 모른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퇴로는 차단되었고, 기술적 해결에 기대를 걸기에는 감당할 위험이 너무 커 보인다. 더욱 신중하고 성찰적인 접근과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셈이다. 아무래도 그 출발점은 우리가 인류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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