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끝나가고 어느덧 겨울이 다가온다. 날이 점점 추워지지만 이는 곧 종강이 다가온다는 반가운 의미기도 하다.
이번 기행에서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덕수궁을 대한문부터 돌담길까지 자세하게 소개한다.

▲저녁 무렵 덕수궁 돌담길의 풍경.(사진=유현동 기자.)

덕수궁은 서울의 5대 궁궐 중 하나이며, 사적 제124호로 지정된 대표적인 역사 유적이자 관광지이다. 우리 학교와 같은 행정구역인 중구에 위치해 있으며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특히 덕수궁은 궁궐 자체도 유명하지만, 주변 명소와 함께 구경하기 좋은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이를 증명하듯 덕수궁은 옛날부터 여러 노래의 소재로 쓰였으며 예술과도 접점을 가진다. 이러한 덕수궁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이고, 당시 덕수궁은 어떠한 입지를 지녔을까?

덕수궁의 본래 이름은 경운궁이었다. 경운궁이라는 이름은 정릉동행궁이라는 이름을 경운궁으로 개칭하면서 처음 등장한다. 정릉동행궁은 정릉동에 있는 임시 왕이 머물던 궁궐이란 뜻으로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의주로 피난했다가 돌아와 임시 거처로 사용돼 붙인 이름이다. 선조는 이곳을 행궁으로 삼은 후 정사를 보았으며, 그의 아들 광해군까지 이곳에서 즉위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까지 이곳을 왕궁으로 삼았다. 1611년에 궁궐의 이름을 ‘흥경궁’이라 칭했다가 이후 광해군이 창경궁으로 거처를 옮길 때 정식으로 ‘경운궁’이라는 궁호를 받게 됐다. 이후 1907년에 통감부의 권력 찬탈로 황제로 즉위한 순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경운궁은 무력해진 상황제 고종이 거처하게 되며 덕수궁으로 그 이름이 격하됐다. 이에 일부에서는 오늘날 덕수궁으로 불리는 이름을 경운궁으로 고쳐 올바른 이름을 되찾아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덕수궁이 역사적 의미로 주목받는 점은 조선 시대의 역사도 있지만,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됐다는 점이 가장 크다. 이곳에서 대한제국이 선포됐으며, 1907년 고종이 헤이그 특사 파견을 계기로 강제 퇴위 되기 전까지 국가 통치의 중심지가 됐기 때문이다. 고종이 퇴위 된 이후 그대로 덕수궁에 머물게 됐는데 이때 경운궁이라는 이름이 덕수궁으로 고쳐졌다. 이는 ‘덕망 높게 오래오래 사시라’는 의미로 조선 건국 초 태조가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떠날 때 거처한 개성의 행궁의 이름인 덕수궁에서 따왔다고 하며 태조처럼 상왕의 장수를 비는 의미라고 한다.

이러한 덕수궁을 직접 보기 위해서는, 우리학교 주변 3호선 충무로역 또는 동대입구역에서 상행선을 타고 을지로3가역에서 내려 2호선으로 환승해 시청역에서 내리면 된다. 이곳의 3번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오면 바로 앞에 덕수궁의 입구인 대한문이 보인다. 이곳 대한문에서는 매일 오전 11시, 오후 2시, 3시 반에 각각 20분가량 ‘왕궁수문장교대식’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진행되는데, 조선 시대에 행해졌던 궁·성문 개폐 의식 등을 그대로 재현하는 행사며 덕수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볼거리로 여겨진다. 커다란 깃발을 들고 전통 의상을 입은 채 행진하는 모습과 그 뒤를 따르는 악대들을 보면 웅장한 기백이 느껴진다. 특히 이 행사가 끝나면 수문장과도 사진을 찍을 수 있어 특별한 추억을 남기기엔 안성맞춤이다.

▲대한문 앞 왕궁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되는 모습.(사진=유현동 기자.)

대한문을 지나 궁 내부로 깊숙이 들어오면 중화문이라는 거대한 문과 그 뒤에 위치한 중화전을 볼 수 있다.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외국 사신 접견 등 주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장소이다. 특히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존재하던 건물이 아닌, 대한제국의 정전으로 처음부터 설계된 점이 특징이다. 중화문을 지나 중화전으로 향하는 길에는 당시 관직의 등급을 표시한 품계석이 좌우로 배열돼 있다. 이곳의 내부 천장에는 거대한 황금빛 용 한 쌍이 있는데 이는 덕수궁이 대한제국 황제의 황궁이었음을 상징한다. 중화문을 통해 중화전을 바라보면, 마치 그 거대한 크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기와 위에 작은 짐승 형상들이 나열된 것과 처마 하나하나를 돋보이게 하는 정교한 장식을 보고 있으면 새삼 당시의 기술력에 감탄하게 된다. 또 이곳의 바로 옆에는 항아리가 위치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드므’라는 이름을 가진 과거의 소화기이다. 드므 안에는 물을 채워놓는데, 이는 화재를 일으키는 마귀인 화마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가기를 바라는 조상들의 재치있는 마음이 담겨있다.

▲중화문에서 본 중화전과 그 앞 품계석들의 모습.(사진=유현동 기자.)

▲중화전 내부 천장의 황금빛 용 한쌍.(사진=유현동 기자.)

중화전을 지나 뒤편으로 향하면, 즉조당과 석어당이라는 두 개의 건축물이 나온다. 이곳은 선조가 임시로 거처했을 때부터 사용된 유서 깊은 공간이다. 즉조당은 대한제국 초기에 정전으로 사용됐으며, 중화전이 완공된 이후 가장 오래 머무르는 편전으로 활용됐다. 이곳을 지나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덕홍전과 함녕전이라는 두 건축물이 나온다. 덕홍전은 외국 사신을 접견할 목적으로 지은 전각으로 외부는 한옥이지만 내부는 서양식인 형태를 보인다. 함녕전은 고종의 침실로 사용됐으며 고종이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다른 궁궐과 달리 덕수궁에는 황후의 침전이 없는데, 이는 명성황후 시해 이후 고종이 다시 황후를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주변에는 원래 여러 전각이 존재했으나, 고종 승하 이후 빠르게 철거돼 지금은 연못과 산책로만이 그 자리에 남아있다.

▲길게 펼쳐진 덕홍전 앞 행랑채.(사진=유현동 기자.)

 산책로를 따라 뒤편으로 향하면, 언덕 위에 이질적인 형태의 건물이 하나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정관헌으로 궁궐 후원의 휴식용 건물이다. 러시아 건축가가 설계해 한국과 서양의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내부에는 큰 커튼과 원목으로 만든 식탁과 의자가 남아있는데, 이곳에서 고종은 커피를 마시며 외교 사절들과 연회를 즐겼다고 한다. 청동색의 외벽과 붉은빛의 내부는 조화롭게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긴다.

▲정관헌 내부의 식탁과 의자들.(사진=유현동 기자.)

 다시 대한문을 통해 덕수궁 외부로 나와 오른쪽으로 향하면, 그 유명한 덕수궁 돌담길이 나온다. 이곳은 여러 노래의 가사로 등장하기도 하고,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등 다양한 작품의 소재로 활용된다. 특히 해가 지고 어둠이 조금씩 깔리기 시작하면 담 아래의 조명과 주변 나무에 걸려있는 전구들이 길을 밝혀주는데 이 빛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온 많은 사람과 같이 돌담길을 걷고 있으면 마치 어느 평화로운 옛날의 거리를 걷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독특한 매력의 장소를 찾는다면, 타 궁궐과 달리 근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인 모습이 잘 조화된 덕수궁을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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