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소설가 장강명의 작품 “표백”에 나오는 얘기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기성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거대 이데올로기, 역사적 과업 등을 향한 도전과 성공을 이루어 왔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큰 꿈을 꾸기에는 많은 것들이 완성되어 있어, 남아 있는 작고 소소한 꿈들을 이루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그래서 젊은 세대는 큰 꿈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무엇이 우리 앞에 있는가에 대해서,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종종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많은 학생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큰 꿈을 위해서 소중한 현재를 포기하는 삶은 싫다고 말한다. 취업난에 허덕이고 끝없는 스펙 전쟁에 내몰리며, 출구 없는 터널을 지나는 학생들에게 역사와 사상, 그리고 거대한 꿈은 사치가 아닌가. 필자는 아직도 풀지 못한 사회적 모순들이 남아있고, 대학 시절만큼은 개인보다는 사회의 문제들에 더 많은 관심을 둬야 한다고 말해 왔다. 젊은 학생들은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필자는 그 이유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조차 한 적이 없다. 그보다는, 사회적 모순에 대해 감정적인 분노로 행동했던 필자의 대학생 시절을 떠올리고만 있었다.

왜 그래야만 할까?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의 의미를 깨우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데, 시대마다 방해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방해 요소들이 때로 독재, 정치적 억압, 전쟁이고, 때로 상처, 갈등, 소외일 수 있다. 모두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들이다. 소소한 문제들은 없다. 모두 우리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문제들인데, 크고 작은 것의 구별이 왜 필요할까? 중요한 것은 내가 삶을 앞에 두고 진지하게 성찰하며 문제를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당당해지는 일이다.

젊은 시절에 필자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인권 유린과 국가에 의한 폭력이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거대 이데올로기적 담론과 이를 실천하는 행동이었다. 젊은 세대 앞에는 환경보호, 양성평등, 사회복지 등의 다소 작아 보일지 모르지만,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이 남아 있다. 이를 두고, 먼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대기업에 입사하고, 안정된 후 다음 단계의 실천적 목표를 설정하고…. 이것이 작지만, 생활 속에 뿌리내리는 나름의 방식이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현실적인 목표일 수 있다. 그 결과, 지역공동체에 속한 개인의 생활 속 작은 실천이 한국사회 전체의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동시대의 매우 본질적인 삶의 문제들 앞에 당당하고 이를 함께 해결하려는 도전 그 자체가 거대한 목표이자 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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