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cm에 55kg.
대학생 A씨의 체형. 마르지도 않고 뚱뚱하지도 않은 표준 몸무게이다. A씨는 지금까지 줄곧 M 사이즈를 입어왔다. 그런데 최근 쇼핑몰에서 산 M 사이즈 옷은 숨을 참아야만 단추가 잠기는 데다가, 누구나 입을 수 있다는 FREE사이즈는 44 사이즈와 55 사이즈만을 위한 것 같다.
언제부터 44 사이즈와 55 사이즈가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사이즈가 됐을까. 과도한 마름을 추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에 따라 줄어드는 옷 사이즈. 그는 이런 비정상적인 마름이 아름다움의 기준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조여오는 FREE 사이즈

본지는 5년 전 바지 사이즈와 현재 바지 사이즈를 비교해봤다. 5년 전과 비교해 보면 많은 사람이 똑같은 S 사이즈이지만 더 작아짐을 느끼고, 모든 체형이 입을 수 있는 FREE사이즈도 작다고 느낀다.
인터넷 여성 의류 쇼핑몰 ‘피그힙’에서 판매했던 5년 전 청바지 사이즈와 현재 판매되고 있는 청바지 사이즈를 비교해봤다. 5년 전 청바지 XS 사이즈의 허리단면은 35cm이지만 현재 XS 사이즈는 33cm이다. 5년전 L 사이즈의 허리단면은 41cm, 현재 L 사이즈는 36cm이다. 5년 전 XS 사이즈를 입은 사람이 지금은 L 사이즈를 주문해야 하는 것이다.
남성 의류 쇼핑몰 또한 예외는 아니다. 남성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의류 쇼핑몰 ‘아보키’의 5년 전과 현재의 청바지 사이즈를 비교해봤다. 5년 전 청바지 S 사이즈의 허리 단면은 38cm인 반면 현재 청바지 S 사이즈의 허리 단면은 35cm이다.
인터넷쇼핑몰은 오프라인 의류 매장과 달리 실제로 착용을 해보지 못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피팅모델의 착용 모습이 중요하다. 그러나 피팅모델은 우리의 현실적인 체형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한 쇼핑몰 피팅모델의 스펙은 167cm에 45kg이다. 하지만 이는 심각한 저체중에 해당한다. 또한 FREE 사이즈로 판매되고 있는 티셔츠의 경우 167cm에 45kg인 피팅모델이 입어도 여유 있어 보이지 않는다. 판매자도 55 사이즈까지만 입기를 추천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FREE’에 해당하는 범주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우와! 마르셨네요

옷 사이즈가 줄어들면서, 사이즈를 통해 자신을 더욱 가혹하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대학에 재학 중인 주지홍(회계18) 씨는 “예전에 옷을 살 때 사이즈는 옷을 사기 위한 하나의 지표였으나, 요즘은 사이즈에 의해 평가받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골랐다가도 평소보다 큰 사이즈를 입어야 할 때, 살이 쪘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 옷을 사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와 같이 옷을 살 때, 사이즈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이 구사됐다. ‘배너티 사이징(vanity sizing)’이라는 마케팅 기법은 옷 치수를 실제보다 작게 표기해 날씬해진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어머! 손님, 44 사이즈딱 맞으시네요! 정말 날씬하세요”

 평소에 L 사이즈를 입던 소비자가 M 사이즈가 맞는 브랜드를 알게 되면 그 브랜드의 옷을 선호하게 된다. 자신이 살이 빠졌다고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얕은 속임수에 불과하지만, 판매 효과는 크다.
‘한세실업’의 TG 생산기획 정유리 주임은 “이 마케팅은 말라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지는 여성들에게 심리적 위안을 주기 때문에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큰 효과를 본 듯하다”고 말했다. 덧붙여“이러한 마케팅이 성공할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미디어의 ‘마름’ 프레임

우리는 마른 몸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드라마, 예능과 같은 미디어 속 인물들은 대게 마른 몸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아, 가장 예쁜 몸매를 가진 스타. 18인치 개미허리와 탄탄한 11자 복근’ 같은 기사 제목은 마른 몸매가 아름답다는 인식을 조장한다.
또한, KBS 드라마 ‘오마이 비너스’의 신민아, ‘구르미 그린 달빛’의 정혜성은 극 중에서 다이어트로 살을 빼야 성공하는 인물로 나타난다. 이처럼 미디어는 비만에서 벗어나 마른 몸을 가져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는 미디어가 우상화한 마른 몸매를 비판 없이 수용한다. 우리대학에 재학 중인 조아형(정치외교16) 씨는 “영화나 드라마, 뉴스를 통해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말랐다”며 “나도 이들을 계속 보다 보니 마른 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우리대학 오상우 가정의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저체중 군의 비율이 높아졌다. 이는 젊은 연령층의 여성들이 대부분이다”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어 오 교수는 “이는 과도한 다이어트 때문인 것 같다”며 “과하게 마른 몸매를 가진 사람들이 사실 건강한 것이 아닌데, 텔레비전에 나오다 보니 잘못된 미적 기준이 조장됐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우리는 미디어에 의해 규정된 몸매를 순종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제는 미디어의 이용자로서, 의류 소비자로서 주체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이에 우리대학에서 소비자학을 가르치고 있는 정주원 가정교육과 교수는 “소비자는 유행처럼 번지는 마른 몸에 대한 추구가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상업성에 길들어진 것인지를 인지해야 한다”며 “타자가 원하는 몸의 가치만을 수용하게 되면 자신의 몸과 마음이 불행해진다”고 전했다.
또한 “소비자 스스로가 먼저 긍정적 자아와 주체성을 회복할 때 몸에 대한 현대 소비가치도 변할 수 있다”며 소비자의 인식변화를 강조했다.

구속으로부터의 ‘FREE’ 선언

소비자의 인식변화 출발점으로‘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자기 몸 긍정주의란 사회적으로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거부하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몸 긍정주의 열풍은 패션계의 변화로 이어져 무조건 마른 모델만 선호했던 것에서 벗어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고용하고 있다. 실제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전선아씨는 “플러스 사이즈도 옷을 매력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패션업계에 알리고 다양한 스타일의 플러스 사이즈 의류가 나오길 원해서 이 일을 한다”며 플러스 모델을 하는 이유에 대해 밝혔다.
그는 자기 몸 긍정주의에 대해 “외모지상주의 때문에 자신을 비하하며 숨어 지냈던 모든 분께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운동이다”라며 “자신도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 씨는 “모든 시작은 내가 나를 사랑함으로 시작된다”며 “자신이 스스로를 아낀다면 자연스레 주변 시선도 변할 거에요”라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세상에 절대적인 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S 사이즈는 아름다운 것이며 XL 사이즈는 창피한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사이즈로 정의 내릴 수 없다. 사이즈로 자신을 판단한고 좌절을 느낀 적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FREE’사이즈가 ‘구속’하는 현실을 돌이켜 보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미의 기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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