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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화’아닌 ‘공존’, 다문화 국가 말레이시아를 만든 힘

기사승인 [1601호]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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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사원 옆 불교 사원 … 타문화 존중이 문화적 풍요 만들어

200만 명.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의 숫자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다문화’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다른 인종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다양한 민족, 다양한 종교 신자로 구성된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알아봤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말레이시아,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다문화 국가가 된 배경


싱가포르에서 버스를 탄 지 두 시간쯤 지나자 말레이시아 국경에 도착했다. 이슬람 국가답게 히잡을 쓰고 있는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이웃 나라 싱가포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자 말레이어, 중국어, 영어가 섞여 들리기 시작했다. 편의점, 식당, 학교 어디를 가도 말레이인과 중국인, 인도인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한국인에게 인기 관광지인 코타키나발루에서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세계 3대 이슬람 사원으로 유명한 블루모스크에서 고작 10분 거리에는 불교 사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말레이시아가 아시아의 대표적인 다문화 국가가 된 유래는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레이시아의 최초 국가인 말라카 왕국은 15세기에 중국, 인도, 이집트 등 해외를 연결하는 무역 거점 역할을 했다. 말라카 왕국은 매력적인 지형적 요건으로 인해 끊임없이 외세 지배에 놓여야 했다. 1511년 포르투갈이 차지한 이후, 1641년 후추를 독점하려던 네덜란드가, 1785년부터는 영국이 지배했다.


영국 식민지배 당시, 주석광산과 고무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이주해 온 중국인과 인도인이 자리 잡게 되면서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60%), 중국계(25%), 인도계(7%), 기타(8%) 인종으로 구성된 다문화 사회가 됐다. 삽잘리 무사 칸 (Sabzali Musa Khan) 말라야 대학교 사회문화학부 교수는 “말레이시아는 해외 무역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15세기부터 다문화 국가의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코타키나발루의 핑크모스크(사진기자 = 김민지).
▲말레이시아 푸토시(Puh Toh Si)사원 (사진기자= 김민지).

모두가 즐기는 종교 행사


말라카 왕국의 모습은 현재 말레이시아의 ‘말라카’라는 지역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말라카의 구시가지는 붉은 건물들이 즐비한 네덜란드 광장에서 시작된다. 유럽식 건축물이 열을 지어 있어 식민지배 당시의 말라카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좁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인 쳉 훈 텡(Cheng Hoon Teng)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사원에서는 많은 중국인이 향을 태우며 기도하고 있었다. ‘이슬람 국가’ 하면 떠올랐던 수많은 이슬람 사원과 경직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말라카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어느 지역을 가도 불교 사원과 힌두 사원, 교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강한 이슬람이 국교이지만, 다양한 종교가 어우러져 사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말레이시아 헌법은 말레이계 이외의 인종에게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포교나 전도 활동 같은 다른 종교로의 강요를 불법으로 간주한다.


아마드 하키미 카이루딘(Ahmad Hakimi Khairuddin) 말라야 대학교 사회문화학부 교수는 “말레이시아인들은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일상에서 연습하고 있다”며 “모든 국민이 이슬람 명절, 중국 명절, 크리스마스를 즐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인류’일 뿐, 우리를 구분 짓는 것은 오직 문화”라고 주장했다.

▲아마드 하키미 카이루딘(Ahmad Hakimi Khairuddin) 교수(좌)와 삽잘리 무사 칸 (Sabzali Musa Khan) 교수(우) (사진기자= 최수빈).

‘공존’에서 한 발짝 더 내딛어야


말레이시아가 처음부터 완벽한 다문화 사회의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1969년, 말레이계와 중국계 사이에서 8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인종폭동을 겪은 말레이시아는 ‘사회 통합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종 간의 화합과 사회적 안정의 유지를 위한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이는 중국인에 비해 경제적 형편이 어렵고 교육의 기회가 적은 말레이인을 우대하는 부미푸트라 정책(Bumiputra policy)으로 이어졌다.


당시 말레이시아의 상권은 전체 인구 중 약 25%인 중국계가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인종 간 부(富)의 편중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중국인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 말레이인에게 돌려주자는 발상은 많은 중국계 국민에게 원성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말레이인과 중국인과의 균형을 통해 국가 경제가 성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말레이인에게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교육 정책을 대개편했다. ‘말레이어’를 국어로 설정하고, 역사나 도덕 과목 역시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가르쳤다. 대학 입학 정원도 말레이인에게 50% 이상을 할당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 역시 중국계와 말레이계의 완벽한 ‘융화’로 이어지기에 부족했다. 아마드 포아드(Ahmad Fouad) 말레이시아 사립 화교 중등학교 교사는 “아직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인종의 ‘융화’보다는 ‘공존’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전히 학생들 사이에서 다양한 교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말레이계 학생들은 말레이 학생끼리 중국인 학생들은 중국인 학생끼리 다니는 경향이 크다”고 전했다. 그는 ‘공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어울리고 소통할 수 있는 최초의 플랫폼인 학교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삽잘리 무사 칸 (Sabzali Musa Khan) 교수는 “정부와 국민들 모두 인종 별로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 역시 “대학에서 말레이계 학생들이 많은 수업에서는 말레이어를, 타인종이 많은 수업에서는 영어로 수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일 뿐,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인을 우대하는 대학 입학 할당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가난해서 교육의 기회가 적었던 말레이인들에게 기회를 열어준 것”이라며 “이러한 과정은 말레이인뿐 아니라 다양한 인종의 화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


다문화 사회의 초입에 있는 한국은 말레이시아의 어떤 모습을 수용할 수 있을까. 아마드 포아드 교사는 “한국은 하나의 표준화된 교육 시스템에 집착한다”고 주장하며 “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문화에 대해 열린 태도를 지니고 인종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만의 고유한 가치와 문화를 추구하며 타문화에 대한 관용을 베푼다면 더욱 성숙한 다문화 사회로서의 한국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태수 말레이시아 한인회 회장은 “단일민족의 특성이 강한 한국은 다문화 사회로의 접근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과 정부 모두 다양한 인종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다문화 사회로 가는 초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열려 있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름’을 인정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설명한 그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단기간에 다문화국가가 되려는 노력보단 장기적인 관점으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최수빈 기자 choisubi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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