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존재들을 위하여

여기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듯이 드라마틱한 일은 없다. 이 익숙한 모습은 매일의 반복과 작은 변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소설 홍희정,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2013)


 제18회 문학동네 수상작인 홍희정 작가의 소설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는 분홍빛으로 물든 표지에 사랑스러운 제목까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특히 ‘시간 있으면’이라는 조건부의 애정 공세는 퍽 유쾌하기까지 느껴진다. 소설은 스물 중반의 나이에도 소일거리를 하는 이레와 율이, 암 선고를 받은 할머니의 잔잔한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등장인물들은 버젓이 취업에 성공하지도, 건강하게 오래 살지도 못하는 모두 불완전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레는 율이를 짝사랑하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로, 할머니와 함께 살며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상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이레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 혹은 반복되는 푸념을 들어주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세상을 성찰하고,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이 마주하는 모든 물상에 대해 적당한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의 가치를 알게 되며 곁에 있는 율이, 할머니의 소중함을 다시 새기게 된다.
이들은 저마다 각자의 하루를 살아나가고, 불안해하고, 외로워하지만, 그만큼 이러한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사소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일은 그들의 일상에 가까이 있는 당연한 존재들이었다. 말하자면, 여전히 이레의 삶은 율이와 함께였고,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율)이 자신에게 손을 흔들며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가끔씩 할머니와 투닥거렸으며,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들의 평범하게 스며드는 이야기는 자신의 삶을 지속 해나가는 우리네 삶과 비슷하기에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영화 패터슨(2017)


 소설과 같이 보면 좋을 영화 패터슨은 뉴저지 패터슨 주의 버스 기사 패터슨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영화가 가지는 극적인 사건이나 과도한 해피엔딩, 새드엔딩이 아닌 물 흐르듯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을 투영한 듯하다. 영화는 매일 아침 패터슨 부부가 침대에 누워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반복적 패턴은 일주일의 생활을 담고 있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시리얼을 먹고, 도시락통을 챙겨 같은 출근길을 지나며, 같은 구간에서 똑같은 버스를 운행하고, 돌아와서 마빈을 산책시키고, 같은 바에 들러 늘 앉던 자리에서 술을 마신다.
하지만 패터슨은 이러한 삶의 반복을 지루함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평온함’으로 인지한다. 행복을 순간의 ‘쾌락’으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그가 비밀 노트에 시를 적는 행위는 패터슨이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시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패터슨은 자신의 삶에 작은 부분까지도 관찰하고 귀 기울인다. 이를테면, 집에 있던 파란 케이스의 성냥갑이 그에게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그에게 지루한 일상은 그에게 ‘시’라는 예술이 되어 조용히 평온하게 흘러간다. 특별함이 아닌 오늘의 하루 속에서 그는 아내와 버스 승객들, 지나치는 사람들에게서 듣는 소소한 이야기들에 웃음 짓는다. 이러한 잔잔한 스토리에 지루하게 느끼는 관객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로움을 견뎌내고, 오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하루를 마무리해야 해서 아쉬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보통의 존재들은 평범한 삶 속에서 찰나 같은 순간의 행복,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게 된 소중한 하루라는 선물이 있기에 일상은 그 자체로 의미 있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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